2018.12.04 07:01

나의 노가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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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그녀와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단은 내가 마감 공정에 들어가니 바빠서 시간을 낼 수가 없었고 사실 첫인상이 별로였던지라 딱히 만나자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묵묵히 알겠다고 그럼 다음에 약속 잡고 보자고 번번히 미루는 나의 장난질에 수긍하며 넘어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지 않고 나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그녀의 심리가 궁금했다.

보통 이 정도면 떨어지지 않나..?

 

그래서 어느 날 날을 잡고 애프터를 신청하고 만났다. 말이 애프터지 한달 정도 지난 후의 애프터가 뭐 애프터일 수가 있겠냐만은.

그녀는 강남에 살았고 강남역에서 만났다. 7번출구를 지나 타워 레코드 앞 동글뱅이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니 그녀가 왔다.

밝은색 코트를 입고 나타는 그녀를 데리고 난 강남 바닥을 잘 모르니 당신이 안내하쇼~ 하고 앞장서게 했고 그녀는 쌩긋 웃으며 사랑의 교회 앞에 있던 샤브샤브 집으로 갔다.

“여기 꽤 맛나요. 제가 요 앞에 교회 다녀서 자주 와요.”

예예… 사실 나도 모태신앙이지만 한국 기독교 목사들의 이기심과 돈만 밝히는 모습에 꽤 실망해서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물론 모든 목사가 그런건 아니지만 오묘한 확률이 나에게 적용 된건지 이상하게 내가 만난 목사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래서 난 대형 교회도 싫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닌다는 그녀도 별로였다.

샤브샤브가 나왔고 우리 둘은 맛있게 먹었다. 뭐 딱히 화제를 공유할 것도 없고 해서 뜨문뜨문 얘기하고 먹고 했다.

그녀는 고기를 넣고 야채를 넣은 다음 먹기 좋게 앞접시에 덜어서 내게 주었고 고맙다고 하고 먹었다. 근데 그녀는 같이 먹다가도 내가 다 먹으면 접시 달라고 하고 또 다시 근사한 샤브샤브를 만들어 내게 주었다. 됐다고 마다하는 내 손을 뿌리치고 그렇게 자꾸 주니 왠지 모를 호감이 생겼다.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와 강남역을 배회하다가 파스쿠치에 갔다.

두번째 만남이지만 뭐 술 먹기도 그렇고 그만큼 내가 관심도 없었다. 이리저리 화제를 돌리다가 돌직구를 날렸다.

 

“제가.. 그 동안 만나자고 하고 빵꾸내고 자주 그랬는데 기분 나쁘지 않으셨어요?”

“ㅎㅎ 아니에요. 바쁘신거 누나에게 전해 들었어요. 그리고 사촌오빠도 건설회사 다니는데 대충 건네들어서 얼마나 힘든지도 알고 있어요.”

 

“ 아 그래요? 어디.. 회사 다녀요? 사촌오빠는.”

 

“음… 어디였지.. 대기업 계열사라 했는데 롯X인가 X부인가..잘 기억이 안나네요.”

 

그녀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던 맞장구를 쳐 주었고 호감을 가지고 날 대하고 있었다. 물론 인턴 김기사만큼의 프로페셔널한 추임새는 없었지만 왠지 그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영양가 없는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나가자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강남역에서 버스 한번만 타면 집까지 금방 간댔다.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고 버스를 타는 그녀를 배웅했고 그녀는 창문 넘어로 손을 흔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면서 그녀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도대체 왜 나를 좋아하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틱틱대고 무덤덤하게 동네 오빠마냥 영양가 없이 대하는데도.

 

현장은 정말 바쁘게 돌아갔고 최대리는 포디엄을, 나와 이기사는 타워 두 동을 담당해서 관리했다. 최대리는 호이스트 타고 올라가기 귀찮고 기다리는 것도 싫다 그랬지만 은근 고소공포증도 있는 것 같았다.

나랑 이기사는 ACS Form 상부 난간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레미콘 입차도 확인하고 게이트 현황도 보곤 했는데 최대리는 통 현장을 안나가다보니 난간대 가까이 가지도 못하더라.

나와 이기사는 저층에서부터 익숙해져서 그런지 거부감이 없었지만 최대리는 눈에 띄게 경계하는 것이 보였고 저속 호이스트에서 내려 외주발판으로 올라가면 금방 가는데 꼭 이너발판으로 어렵게 올라갔다.

하긴.. 추가 분양을 위해 현장 전경을 찍노라고 사진사가 왔었는데 최대리와 마찬가지로 난간대 근처도 못 가더라. 멀찍이서 중국사람이 사진 찍는 포즈마냥 뒤뚱하게 사진을 찍었고 뒤에서 난 혼자 속으로 엄청 웃었다.

 

이기사가 어느 날 나에게 고민상담을 신청했다.

“김기사님 저… 커피 한잔 하시죠.”

“왜? 뭔 일 있어? 뭔데 그리 심각하게 포즈를 잡고 질문이야 쉐캬?”

 

아무도 없는 탕비실로 간 이기사는 하아… 아버지가 차를 사 주셨는데 현장에 끌고 다니기가 좀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냐며 물었다.

 

“차종이 뭔데?”

 

“렉스턴이요.”

 

“오옷!! 얼 이기사 아버지 멋지시구만!”

 

당시 현장에는 암묵적으로 룰 같은게 있었다.

소장님 차는 르노삼성 SM525V, 근데 뒷 딱지는 520V로 바꿔달고 타고 계셨고

팀장님 차는 소나타 또는 매그너스 등, 중형차급

그리고 그 밑에 초임 간부 또는 사원들은 아반테를 비롯한 중소형차 급을 타고 다녔었다.

 

그래야만 한다는 룰 같은 건 없었지만 으레 그러 듯 구두상으로 전해져왔기 때문에 이기사는 차는 있어도 타고 다니기 걱정스러워 했다.

 

“음.. 내 생각에는 SUV 차는 괜찮지 않을까?”

 

“그럴까요…”

 

“직원 주차장에 주차하면 눈치 보이니 업체용 주차장 저 구석에 주차를 해.”

이기사는 알았다며 몰래 몰래 주차를 했고 나중에서야 박차장에게 들켰다.

박차장은 야이노무쉐키 돈 많다 너? 하며 회식을 갈 때나 팀이 움지여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이기사의 렉스턴을 애용했고 이기사는 그 후로 운짱 담당이 되었지만 그래도 뭐 눈치 안보고 편히 타고 다닐 수 있어서 만족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임원 승진 인사가 발표되고 소장님은 미끄러지셨다.

덤덤하게 뭐 이번에 승진한 XX는 참 일도 잘 하고 괜찮은 애야.잘 됐지 뭐 하시며 점심 먹으며 팀장들에게 얘기는 하셨지만 그렇다고 서운한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임원 진급한 사람들이 소장님보다 기본으로 세네살 어렸고 엊그제까만 해도 XX부장 또는 XX야 이거 저거 뭐냐 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XX상무님 XX 이사님 이러기가 쉬웠을 까.

 

상호 존칭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임원을 달면 반년 만에 서열이 없어지고 나이를 떠나서 막말을 하게 된다고 최대리가 말해줬다.

 

추운 겨울이 지날 무렵 직원 승진 발표가 있었고 우리 현장에서는 세명이 승진했다.

공무팀장님이 차장에서 부장으로, 박차장이 차장에서 부장으로 그리고 전기 공대리가 과장으로 진급했다.

 

우리 모두는 축하축하를 하고 회식을 했고 세명이 뿜빠이로 룸도 쐈다. 그리고 공무팀장님은 또다시 최대리의 주선으로 공채 모임을 했다. 저번과 같은 곳에서 했고 이번에는 이기사와 설비 송기사가 추가되어 공채는 총 여섯명으로 늘었다.

 

난 혹시 다희가 있나 해서 물었지만 다희는 저번에 관두고 잠깐 일 하다가 안나온다 했다.

잘 지내는거겠지..

 

다시금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고 개나리가 노랗게 피었다.

누나가 소개시켜 줬던 그녀와는 간헐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지만 딱히 사귀고자 하는 맘은 없었고 요즘말로 하면 어장관리 중이었다.

친구가 소개시켜 준 또다른 여자와도 연락을 했고 나는 이 둘과 번갈아가며 같은 영화도 두번 보고 그랬었다. 육체적인 관계는 둘 다 하진 않고 손만 잡았나 그랬었다.

 

그러던 중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났다.

 

정말 어이 없게도 일공구쪽에 원형램프 작업 중 잔여 토목공사가 있었는데 토목업체 작업자가 가설 스트럿 해체를 하던 도중 중심을 잃고 십미터 아래로 추락해서 사망한 사고였다.

공사팀은 다들 골조와 마감공사로 바빠서 토목 차장이 직접 관리 중이었고 단지 검측만 임기사가 받아줬었는데 여기서 사고가 났다.

 

작업자는 운이 없게도 머리부터 추락했고 토목업체 작업반장이 급하게 무전기 채널을 안전 채널로 바꿔서

 

“사람이.. 떨어졌어요!! 사람이 떨어졌어요!!”

 

라고 급하게 외쳤고 하필이면 휴일인지라 직원 절반밖에 출근을 안했었는데 모두들 후다닥 현장으로 뛰어나갔단다.

 

안전팀과 패트롤들이 긴급조치를 하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119를 불렀다.

작업자는 병원으로 가자마자 사망했고 그 후로 현장은 비상체제로 전환되었다.

 

노동부에서 나오고 구청에서 나오고 본사에서 나오고 모두가 현장에서 나왔다.

모두가 구둣발 또는 안전화발로 현장 사무실을 다니며 자초지종을 캐물었고 토목 차장은 얼굴이 빨개져서 덜덜 떨며 진술서를 쓰고 그랬다.

 

임기사는… 어처구니 없게도 검측을 대신 해줬다는 이유로 같이 조사를 받고 왜 안전조치를 안했는가 강한 질책을 받았다.

 

왜 작업자가 도대체 안전벨트도 안하고 가설 스트럿에 기어 올라갔는지, 왜 안전로프는 없었는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고 다들 건축공정에 바쁜지라 잔여 토목공정에는 소흘했었다.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고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토목 차장 대신 임기사가 책임지고 그만둔단다!!

 

 

아니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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