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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0 19:54

[환상괴담] 마이튜브(MYTUBE)

조회 수 233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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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anic&no=100882&s_no=100882&page=3

1.
소파 위 두 소년이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다.
기껏해야 상하좌우로 한뼘이 될 화면 속으로 금방이라도 빨려들 것만 같다.

삐용삐용! 영상이 시작된다.
자극적인 배경음악만큼이나 과장된 몸짓으로 등장한 주인공은 자신의 유행어를 늘어놓으며
오늘의 컨텐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시작 전 좋아요와 구독을 반드시 잊지 말라는 멘트는 늘 고정이다.

한편 소파 멀찍이 한 켠에 앉은 채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하는 남자가 있다.
본인 앞에 놓인 텔레비전 속 드라마는 본 채 만 채. 언짢은 표정으로 아이들만 보고 있다.

남자는 두 형제로부터 핸드폰을 뺐을까 말까 갈등 중인 듯 하다.
그러나 그럴 순 없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너무 집중해서 보고 있기도 할뿐더러,
그렇다고 핸드폰을 끄고 자신이 아이들과 저녁 내내 놀아주기엔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럴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이다. 황금같은 일요일 저녁.
조금이라도 쉬어야 또 한 주 사회생활을 버텨낼 것이 아닌가.

결국 남자는 어쩔수 없이 시선을 돌려 텔레비전에 고정시켜 보지만 내용엔 집중하지 못 한다.
꽤 복잡해보이는 표정. 텔레비전 속 알콩달콩한 연인들을 보더니 더욱 심란해져보인다.
짐작하건데, 이 집의 기묘한 저녁 풍경이 비롯된 사연에 대한 회상을 하는 듯 하다.

간단한 이야기다.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하지 않게 되어 이혼했다. 끝.
만나고, 설레여하고, 같이 걷고, 껴안고, 그런 기승전결은 생략하자.
그 결과로 두 형제가 태어났고 남자의 집에 남았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에 이 집 남자 셋이 각자 번쩍거리는 네모난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아내 없는 집. 엄마 없는 집.
누군가는 아이의 저녁도 챙겨주고 숙제도 봐주고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친구와 놀았는지 물어봐줘야 할텐데.

어느 집은 엄마가, 아니면 아빠가, 보통은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가며 그런 역할을
한다는데 이 집은 그게 없다. 남자는 나름대로 잘 하고 싶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집 아빠는 혼자 식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멀리까지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그래서 두 형제만 덩그러니 집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평소 집안을 채우는 소리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여행방송, 요리방송, 예능방송ㅡ...

그나마도 밤이 깊으면 아이들을 위한 내용 대신 어두운 밤에 걸맞는 어른들의 속사정이
채널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결코 이 곳이 원더랜드는 아니었으리라.

다행인 건 남자가 고생하는만큼 벌어오는 수입이 살림에 부족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손수 요리한 식단은 아니더라도 손맛 좋은 이모님들이 만든 반찬을 넉넉히 사놓을
정도는 되었고, 아이들이 텔레비전 대신 장난감을 원한다면 그것이 드론이든 슬라임이든
원하는 대로 사다줄 형편은 되었으니까.

오냐오냐 키우면 버릇이 나빠진다지만, 일주일에 겨우 하루이틀 얼굴 보는 게 고작인 아빠가
아이들에게 야단을 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만큼은
어떻게든 맞춰주는 대신 아빠가 곁에 없어도 세 끼 잘 챙겨먹기, 일찍 자기, 양치 꼭 하기와
같은 당연한 일들을 알아서 해주기를 간곡히 바랄뿐.

벽에 걸린 시계가 하루 임무를 다 마치곤 새 임무를 위해 달리고 있는 시각.
아이들은 자러가고, 남자는 거실의 불을 끈 채 비로소 자신이 관심 있어하던 방송 하나를
다시보기로 틀어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시선은 딴 곳을 향하고 있다. 아이들로부터
되돌려 받은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아하니 무언가 검색한 모양이다.
방송용 캠, 방송용 마이크.
영상 제작자에게나 필요할 법한 물건이다.
남자는 아이들의 영웅이 되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던 영상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것일까? 아니다. 그 반대다.
아이들이 영상을 찍고 싶다고 떼 쓰며 매달렸기 때문이다.
겨우 달래어 침실로 보내긴 했지만 남자는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입문용 장비는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이미 인터넷 장바구니엔 몇 개의 장비가 담겨있었다. 다만 결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 것이다.

" 휴. "

결국 결론을 내린 남자.
구입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화면으로 보아 아이들이 원하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진 듯 하다.
남자는 아이들이 새 장난감에 질릴 때까지만이라도 집에서 무료하지 않게 지내주기를 바랄뿐이다.
뻐꾹 뻐꾹. 1시다. 일찍 운전해서 가려면 이젠 남자도 자야만 한다.
택배는 이틀 정도 걸리려나, 남자의 혼잣말을 끝으로 텔레비전도 꺼진다.
마침내 조용한 밤이다.


2.

[ 안녕하세요, 형제티비의 형, 얘는 동생입니다. 오늘은 제가 컵라면 먹방 최초로
도전해볼건데요, 뭐 특별한 건 없지만 재미를 위해서 스피드 먹방 가보겠습니다.
좋아요와 구독도 눌러주세요. ]

[ 어, 노잼이라는 댓글이 많더라고요. 소통 방송이 목표니까 피드백 받아들이고요.
오늘은 초심 잃지 않았다는 거 보여드리면서 컵라면 세 개! 세 개 스피드먹방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나가지 마시고요. 동생한테 시간 정확히 재라고 하겠습니다. 리얼로 가볼게요. ]

[ 엄마가 반찬 잘 하시는 거 같다고요? 이거 엄마가 한 거 아닌데, 사온 거에요,
근데 뭐 맛있으니까 됐어요. 죄송한데 엄마 없다고 뭐라고 하시는 분은 강퇴 할게요.
근데 강퇴 어떻게 하지? 이건 채팅 금지인데, 채금말고... 어... 잠시만요. 아, 카메라
건드렸다. 야, 형 카메라 좀 세워봐. 됐다. 채팅... 채팅... 어~ 아이디 형제왕팬 님,
바다포도 먹방 해달라고요? 바다에서 포도가 자라요? 아, 포도는 아니에요? 해볼게요.
지금 세 분 영상 보고 계신데, 구독 꼭 눌러주시고 컨텐츠나 아이디어 댓글로 남겨주시면
골라서 영상 찍어볼게요. ]

[ 형제티비ㅡ 아임 형, 디스 이즈 동생입니다. 유튜브 최초 막장초딩 친형제 채널,
요즘 폼이 올랐다는 덧글이 대세입니다. 폼? 뭐 폼클렌징 거품 같은 말인가요?
아무튼 폼! 올랐습니다. 박수~ 그러나 초심 안 잃고 해보겠습니다. 저번 바다포도 먹방
ASMR 버전으로 가려다가 좀 실패했는데요, 오늘 해볼 컨텐츠는 실패 없습니다. 백퍼센트
실화, 핵불닭볶음면 챌린지! 그리고... 두구두구두구두, 취두부 먹방입니다! 으, 벌써 냄새가
장난이 아닙니다. 좋아요, 구독 눌러주시고요. 오늘 최초로 50분 보고 계십니다.
형님 누나들 형제티비가 인사 박습니다. 50분 돌파, 51분, 지금 52분! 크으,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그럼 핵불닭 비벼볼게요! ]

[ 쓰읍- 하.. 아, 졸라 맵습니다. 야, 물 좀 떠와. 아 빨리, 매워죽겠다고,
요즘 동생이 말을 안 듣네요. 아무튼 물 가지러 갔습니다. 씁, 하, 너무 매워요,
그럼 취두부도 열어보겠습니다. 우웩. 냄새. 우욱. 화장실 냄새가 나는데요,
형제티비 형으로서 참고 먹어보겠습니다. ]

[ 유튜브 시청자 여러분, 형제티비를 사랑해주시는 형님누님 여러분, 아임 형
디스 이즈 동생입니다, 유튜브 최초 막장초딩 사이코 실험실, 폼 오를대로 올랐구요,
앙 기모띠 배불띠 안전띠 허리띠ㅡ, 어제 구독자 3000명 돌파, 땡큐 베리 감사하구요,
요즘 벌레 같은 댓글이 많아서 먹어치워버리고자 벌레 먹방 가겠습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아, 채팅창 폭발적인 반응. 자축 박수 갑니다. 삼삼칠로 갈게요.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크으~ 실시간 시청자 100분 오늘 넘길 수 있을지,
지금 88명. 그럼 방송 시작합니다. 오늘 먹을 벌레는 애완펫샵에서 구매했구요.
아주 신선하고 아직 살아있습니다. 먹는 방법은 1번 생으로 먹는다, 2번 갈아서 마신다,
3번 튀겨서 먹는다, 1분간 채팅창 반응 보고 결정하는데 신박한 방법 있으시면
채팅창에 남겨주시구요. ]


3.

" 차장님은 유튜브 보는 거 없으세요? 전 요새 유튜브 때문에 맨날 새벽 2시 넘겨서
자요. 꺼야지 꺼야지 하는데, 자기 전에도 잠 오는 음악 같은 거 검색한다고 시간 다
버린다니까요. "

" 그 시간까지? 질리지도 않냐. 난 요새 머리만 기대면 곯아떨어져. 그나마 집에 가면
티비는 좀 본다. 집에 애들 둘이 맨날 내 폰 가져가서 유튜브 보더라만, 그게 그렇게 재밌냐? "

" 애들은 더 하죠~ 우리 집 애들도 완전 유튜브 중독이에요. 저도 중독이라서
큰일인데, 애들은 더 해요. 우리 때는 그나마 보는 걸로 끝났지, 요즘은 애들도 유튜버
한다고 막 나오고 그러더라니까요. 딱 우리 애들이랑 비슷한데, 형제티비라고,
얘들 좀 보세요. 골때립니다. "

" 형제티비? "

" 이거 보세요, 우리 애들이 제 폰으로 보는지 추천 영상에 뜨던데, 아주 가관입니다.
이런 건 부모가 일부러 돈 벌려고 시킨다는 말도 있고, 참 세상이 뭐가 어떻게 되려고... "

" 김 대리. 폰 이리 줘 봐, 빨리. "

" 에? 어... 예에. "

" ... "

" 대박이죠? 요 형이라는 애는 제법 말재간도 있고 요즘 유행도 잘 따라가긴 하는데
동생한테 하는 짓 보면... 애들이 배울까 무섭더라구요. "

" 김대리, 이거말야, 이거 내 폰으로도 볼 수 있어? "

" 예? 그정도로 마음에 드세요? "

" 이거 볼 수 있는 링크 좀 내 문자나 카톡으로 보내줘. 급해. "

차장이라 불린 남자는 복잡한 표정으로 옥상을 떠나버린다.
순식간에 남겨진 대리는 멍하니 서있을 뿐이다.
형제티비에서 나오는 요란한 음악이 옥상을 맴돈다.


4.

[ 예, 오늘 동생 참교육 들어가고요, 예의범절 확실하게 가르치겠습니다,
아직 900명이니까 오프닝 진행하다가 950명 이상 되면 유튜브각 재겠습니다.
동생 지금 벽 보고 서있는데요, 요즘 실험방송 하면 협조도 안 하고 자꾸 투덜거려서
방송 맥 몇 번이나 끊겨서요, 교육 필요한 부분 인정입니다. 하지 말라고요?
이미 많이 참았구요, 형님누님들 설문조사 해서 컨텐츠 진행하는 부분입니다.
프로불편러 등판은 실시간으로 관리 들어갑니다. 참고로 참교육 컨텐츠 할 때마다
구독자 천명씩 떡상하고 있고요. 형인 저도 마음 충분히 아프고요. 방송에서
몇 번 말씀드렸지만 저희 형제 엄마 없고 아빠도 자주 못 오셔서 형인 제가
동생 가르쳐야 되는 부분이고요, 유튜브 잘 키워서 동생 물려줄 거니까
오지랖 채팅 금지입니다. 다 동생 잘 되라고 하는 거거든요. 지금 930명인데,
자꾸 댓글에 분탕 치시는 분들 보여서 그냥 진행하겠습니다. ]

= 횽이다횽 님 10000원 후원!
" 형아, 동생 서있다가 시간 다 가겠다, 유튭각 잡을거면 스피드 진행하자 ㅇㅋ? "

[ 아, 횽이다횽 님 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스피드 진행하라는 여론 받아들입니다.
1번 간지럽히기 2번 물구나무 3번 유격훈련 4번 만원의 지니, 참고로 구독자 형님누님
여러분들께서는 아시지만 만원 후원하고 4번 지니의 램프 여신 분은 요구에 맞춰서
진행해드립니다. 직접 때리는 거 안 되고요, 이어폰 꽂고 노래 크게 틀기, 취두부
안 뱉고 삼키기, 성공하고 컨텐츠로 2차 생산한 아이템인거 아시죠. ]

[ 문 열리는 소리 들렸다구요? 저희 집 비밀번호 문인데요, 주작 안 통합니다.
어? 아빠? 어어! 어! ]

" 너 뭐해 이 새끼야, 네 동생이 왜 벽 보고 서있어, 아빠가 이러는 거 모를 줄 알았어? 어! "

[ 악! 아빠, 잘못했어요, 아빠! ]

= 초딩의반란 님 1000원 후원!
" 아빠 등판ㅋㅋㅋㅋ 캡틴아빠리카 등판 형노스 인생실전 제대로 배우고요 엌ㅋㅋㅋ "

= 횽이다횽 님 5000원 후원!
" 동생 구사일생 ㅋㅋㅋㅋ 형제티비 부자티비로 재편성각 ㅋㅋㅋㅋ "

" 너 이딴 거 하라고 아빠가 장비 사줬냐고! 똑바로 안 서! "

[ 아빠, 설명할게요 아니 설명드릴게요 ]

" 설명? 이 자식이 진짜 나랑 장난하냐? 동생한테 나쁜 거 먹이고, 형이란 놈이
먼저 나서서 광대짓 하고, 이게 네가 말하던 방송이야? 이거 하라고 아빠가 장비 사줬어? 어! ]

[ 아빠 잘못했습니다 ]

= 커피맛코피 님 10000원 후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형 참교육잼ㅋㅋㅋㅋ갓버지ㅋㅋㅋㅋㅋ 레전드다 "

" 종아리 걷어. "

[ 아빠.. ]

" 종아리 걷어! 내가 너희들에게 미안해서 지금껏 매 한 번 안 들었는데,
안 되겠다. 빨리 종아리 걷어! "

[ 아빠 안 할게요. ]

" 안 하고 말고가 어딨어, 너 누구 보라고, 어, 유튜브에 그게 다 뭐야!
아빠가 너희들 엄마 없이 키우느라 너희 그렇게 자랐다고 아빠 욕 먹이고 너희 욕
먹이는 거잖아! 너도 와서 종아리 걷어! 형이 하란다고 다 해? 형이 죽으라면 죽을래!? "

[ 아빠아- ]

= 효녀심청 님 5000원 후원!
" 이성계 등장에 이방원 몰락 ㅋㅋㅋㅋ 가족시트콤 개꿀잼ㅋㅋㅋㅋ "

형제의 하얀 종아리가 점차 벌겋게 부어오른다.
실시간 시청자가 마침내 천 명을 넘긴다. 약속대로 컨텐츠가 시작된 셈이다.

형제의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그 눈물에 비해 보이지는 않지만 아비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있다.
시청자는 입소문을 타고, 또 동생체벌이란 제목에 이끌려 들어온 사람들이
남의 집 애 때리는 광경을 보고 나가지 못 하며 금새 천오백명에 달한다.

초딩 유투버, 형제 유투버, 막장형제초딩 형제티비의 몰락이란 소식에
구독자를 비롯한 가상의 군중이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한다.

= 발암과같이사라지다 님 50000원 후원!
" 레알찐참교육 청학동뺨치는 에듀케이숀 커뮤니케이숀 방송 형제티비 ㅋㅋㅋ "

형제의 종아리가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 되고,
그 울음소리가 사운드를 꽉 채운다.
역대급 실시간 시청자 수 갱신,
그러나 어떠한 리액션도 없다.
그런데도 후원은 끊이질 않는다.
원래라면 방송을 종료했을 시간을 훨씬 넘기고 있다.

댓글창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아동학대라는 의견과, 부모한테 맞아본 적 없냐는 의견의 싸움,
주작이라는 의견과 주작이더라도 아빠가 무슨 애를 때리겠냐는 의견의 싸움,
이런 영상에 왜 도네를 하냐는 의견과 재밌다며 2편 가자는 의견의 난장판ㅡ...

어쨌든 실시간 시청자 수 3천명.
아직 울고 있는 남자 수 3명.


5.

족발, 치킨, 피자, 맛있을만한 건 다 배달되어 올려진 식탁.
아들들이 영 손을 대지 않자 남자는 더 초조해 죽을 지경이다.
그 맛있는 양념치킨도 먹는 둥 마는 둥, 아이들의 약 발린 종아리와 퉁퉁 부은 두 눈을
보며 남자는 1초에 한 번씩 무너지고 있다.

이럴거면 애초에 사주지 말 걸, 이럴거면 평소에 좀 더 신경 쓸 걸,
아이들이 뭘 보는지 챙길걸, 결국은 헤어진 아내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고,
남자는 괜히 일어섰다 앉고, 헛기침을 하고, 아이들의 앞접시에 맛있는 부위를
얹어주지만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울 순 없는 모양이다.

차라리 상갓집을 가도 알게 모르게 반가운 사람들끼리는 인사도 하는 법인데,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이토록 거룩한 분위기란 참 기묘한 광경이다.

" 많이 아팠지, 아빠가 진짜 미안하다. "

" ... "

금방이라도 다시 울 듯 비죽이는 막내를 꼭 안아주는 남자.
형쪽은 의외로 의젓하다.

" 아빠한테 할 말 있으면 해. 아빠도 잘못한 부분이 많으니까
너희한테만 고치라고 안할테니까. "

" 아빠, 아까 잠시 컴퓨터 끄면서 봤는데... "

" 응. 봤는데? "

" 실시간으로 보는 사람 삼천명 넘겼더라구요. "

" 삼천명?! "

남자가 더 놀랄 틈도 없이 어느덧 눈물까지 닦은 아들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간다.

" 솔직히 동생 체벌은 제가 잘못한 거니까 다신 안 할게요.
동생한테도 미안하고요. 근데 삼천명 넘기는 거는 진짜 처음이거든요.
구독자 백만명 이런 채널도 실시간 천명 넘기기 쉽지 않은데, 솔직히 대박인데...
동생은 공부 시키고 아빠랑 저랑 가끔 이런 컨텐츠 하면 어떨까 싶어가지고요.
물론 진짜로 말고 가짜로요. 대신 미리 어떻게 할 지 정해가지고 진행하고요. "

" 무슨 소리 하는거야. "

" 아까 방송 끝나고 좋아요랑 구독자 엄청 늘었어요. "

" 야! "

큰 소리에 깜짝 놀라 겨우 입에 댔던 치킨을 떨어뜨리는 막내.
남자는 그 모습에 아차 싶어 겨우 큰 소리를 참지만 얼굴이 금새 달아오른다.

" 아빠, 진짜 대박이라니까요. 딱 한 번 저하고 컨텐츠 더 해보시면 아실 걸요? "

" ... 그만해라. 그냥 밥 먹어라. 그리고 컴퓨터는 압수다. 컨텐츠인지 뭔지 모르겠고,
너희 맛있는 밥 먹으라고 아빠가 돈 벌지, 취두부인지 군소인지 그런 거 맛도 영양도 없는 거
억지로 먹고 울고 불고 하면서 광대 짓 하라고 돈 버는 거 아니야. 아빠 더 화내기 싫다,
지금 시킨 거 천천히 먹고... 내일부터 컴퓨터는 너희 중학교 가기 전까지 금지다. "

" 아빠! 진짜에요! "

남자는 아들들을 식탁에 앉혀둔 채 머리를 식히러 베란다로 향한다.
끊은 담배가 미칠 듯이 피고싶다. 이대론 안 될 것 같아 얼른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선다.
밤 공기가 무척이나 차다, 그런데도 속에 꽉 찬 열이 해소되지 않는다.
어떤 감정인지 표현할 수 없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를 풀 길이 없다.
아들이 방금 무슨 말을 떠든 것일까? 나 자신이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남자는 필름이 끊긴 취객처럼 어느새 편의점 카운터 앞에 서있다.
정신을 차리니 담배를 3개비째 피고 있다. 고개를 흔드니 이름 모를 다리 앞에 와있다.
일렁이는 물결을 쳐다본다. 어디서 오는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자신의 삶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지키려고 생각했던 가족이,
어느 정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빠 노릇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 수면에 비친 남자의 얼굴이 물결과 가로등 빛을 받아 이리저리 부서진다.
아빠, 차장, 애연가, 이혼남, 병신ㅡ... 백 가지나 넘는 가면을 쓴 피에로.


6.

" 너 차장 맞냐? "

" 죄송합니다. "

" 돌았어? 점심 먹고 쉬었으면 일을 해야지, 대체 어제 어디 갔었어.
무단으로 어제 오후 오늘 오전을 통째로 비워? 야, 어제 우리 부서 몇 건 날아갔는지 알아? "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

" 열 번 잘하다가 한 번 삐끗할 수는 있는데, 문제는 이번 건은 일하다가 날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내가 둘러댈래야 둘러댈 꺼리도 없잖아! 자네 고생하는 거야 당연히 알지,
집도 여기 아니고, 집에 애들 둘이 있고, 그리고 너 이혼하고... 됐다, 아무튼,
아무튼! 그냥은 못 넘어갈 판이야. 안 짤리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가서 시말서 써와.
나도 죽겠어, 나도 너 살려달라고 임원들 바짓가랑이 붙잡으러 가야 된다고 지금.
시말서 써서 올려놔. 매뉴얼로 따지면 최소한 감봉이야. "

" ... "

아침에 컴퓨터가 되지 않자 아들은 등교를 거부했다.
남자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지만 끝내 아들과 뜻이 맞지 않아 또 고함을 질렀다.
그 탓인지 목이 쑤셨다. 아들은 학교를 제대로 간 건지, 아니면 가는 척을 한건지
모른다. 학교 담임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해야겠지만 우선 단단히 마음이 돌아선 거래처에
사과 전화를 돌리는 게 먼저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학교를 갔는지, 안 갔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방법.

담배를 물지만 떨린 손가락이 불을 붙이지 않고 딴짓을 한다.
스마트폰 속 화면이 어딘가로 접속한다.

[실시간] 형제티비 복귀 방송 (주작 논란 해명)

들어가자 아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석쇠에 오징어 굽듯 뻘겋다 못해 검은 줄이
죽죽 그인 아들의 종아리가 화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 주작 아니고요, 리얼로다가 맞았습니다. 연고 발라주셨는데 만지면 아프네요.
오늘 동생은 학교 갔고, 저는 갈 기분이 아니라서 그냥 방송 들어왔습니다.
컴퓨터 금지라고 코드 같은 거 다 빼셨는데 솔직히 어떻게 연결하는지 다 아니까
다시 켰고요... 제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방송은 계속 할건데 주말에는
못 해요. 아빠가 주말에는 오시는데, 중학교 가기 전까지는 그 컴퓨터 금지인
상태일거라서요. ]

주작, 연고, 아빠, 차장, 시말서, 감봉, 이혼,
무단, 대화, 고함, 담배, 방송, 실시간, 학교,
아침, 실수, 회사, 형제, 해명, 거래처, 복귀ㅡ...

남자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고,
책상 위에 시말서는 올려져 있지 않았다.
어떤 사직원도 제출한 적 없었지만
자리에 사람도 앉아있지 앉았으니,
앉아있지 않은 사람의 제출한 적 없는 사직서가 수리된 건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의 일이었다.


7.

쾅! 쾅!
- 문 열어! 빨리 안 열어!

쾅! 쾅!

[ 형님 누님들, 지금 실시간입니다. 유튭각 2탄입니다. 대박사건입니다.
나가지 마시고요, 레전드 찍는 중이니까 끝까지 같이 가주시고요, 저도 많이 떨리네요.
문은 지금 닫았습니다, 뭐라구요? 댓글 올라가는 속도 너무 빠르네, 위로 올라가서
볼게요, 아, 의자를 문 앞에 대라구요? 접수했습니다. ]

쾅! 쾅!

[ 담배한개비 님 후원 감사합니다, 뭐하는 방송이냐고요? 공성전 방송입니다.
국내 최초 공성전 컨텐츠, 잠깐만요, 문 열릴려고 하는데? 책상? 아 방송장비
올려져 있어서 안 되는데, 침대를, 아오, 개무겁고요, 어! 안 돼! ]

ㅡ...

문은 열렸고, 악귀 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뛰어들어와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매서운 날이 서있는 손바닥이 끝내 천장을 향한 채 내려오지 않은 건
남자의 마지막 이성이 마음 속에 깨어난 괴물을 가까스로 눌렀기 때문이다.

" 왜... 왜 학교 안 갔어... 왜... "

[ 오늘 게스트 아빠 오셨구요 ]

" 아빠 말하잖아... 왜 학교 안 갔냐고... "

[ 아빠는 왜 회사 안 갔어요? 지금 회사 갈 시간 아니에요? ]

" 왜 학교 안 갔냐고! "

[ 으아, 여러분 무섭지만 영상 레전드각을 위해 참을게요! ]

피하거나 막을 생각도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문 아들을 보자
남자는 오히려 화를 낼 생각조차 들지 않아 방구석 한 가운데 주저앉았다.
스마트폰 전화벨이 죽어라 수십통째 울리고 있었지만 단 한 건도 받지 않고 있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 이번 생은 틀렸다는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 아빠 왜 안 때려요? ]

" ...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해. 너 맘대로 해... "

= 패트와매트 님 10000원 후원!
" 크으 갓버지의 정식 인정을 받은 형노스, 형제유니버스 페이즈 투 시작ㅋㅋㅋ "

[ 어... 아빠 저 학교 안 갔는데. ]

" 그래.. 그래.. 나도 회사 안 갔어.. "

[ 형님누님들 우선 형제티비 오늘 레전드각 영상은 안 나올 거 같고요
지금 기대하고 실시간 천오백? 헐, 대박, 지금 이천명 넘게 보고 계시니까
그 대신에 리액션 찰지게 한 번 가볼게요, 뭐 데시벨 리액션이나 의자 댄스,
벽타기, 격파, 아시죠. ]

" ... "

'거래처 A, 거래처 B, 임원한테 본인 대신 빌러간 상사, 믿고 의지하던 후배,
친한 동기, 연락 주기로 했던 컨설팅업체 최 연구원, 홍보물품 견적 넣어놓은 광고사 사장,
자동차 과태료 납부 관련 연락주기로 한 구청 공무원, 보험 약정 변경 건으로 전화 온
은행권 지인, 큰아들 학교 담임ㅡ ... 부재중 목록이 쌓이고 또 쌓여간다.'

[ 만원 후원! 격파 갑니다! 우선 연필 격파! 뜨아앗! ]

'쉬고 싶다, 나도 좀 편하게 벌고 싶어, 맨정신으로 살기엔 세상이 이렇게나
비틀려져있는데, 어떻게 똑바로 걸어ㅡ.'

[ 아빠 뭐하시냐고요? 어, 게스트... 시죠? 와, 십만원 후원! 오졌구요!
리액션 뭐 할까요? 타란튤라 흉내, 갑니다! 꺄울~ ]

'저게 무슨 타란튤라야. 그냥 네 발로 미친듯이 기는 것뿐이잖아, 타란튤라를 보기나 한거야?
내 아들이지만 한심하다. 남 아들이었으면 더 했겠지... 저걸 보고 돈 주는 놈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하긴... 저러는 꼴을 보고 웃는 놈들이라면 그럴만도 하지.
천원... 오천원... 만원... 지금까지 들어온 돈 합치면 내 일당보다 많겠네.
이젠 아닌가. 당연히 짤릴 직장인데.
모르겠다- 그 여자 없이 잘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꼬여서 모르겠어, 나도 못 해먹겠고, 아들 저러고 있고,
그냥, 씨팔, 다 모르겠고, 이혼하고 회사 짤리고 아들 둘이 있고 그 중에
하나는 저러고 있고, 저게 회사 다니는 나보다 더 많이 벌고,
아들은 저게 좋다고 저러고 있고, 저딴 짓거리 해도 돈 잘 벌고,
저게, 저게 돈이 되고, 그 말이 안 되는 아이러니가 돈이 되고,
나는 뭣도 아니고, 으흐흐. 에헤헤.
형제티비... 구독. 좋아요.'


8.

요거요거 신세계!
세상천지 별천지 신천지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 방망이!
왜 뼈빠지게 일했을까? 그냥 소리 꽥 지르고 엎지르고 아들 하고싶은대로
나 떠들고 싶은대로 상사 눈치 안 보고 거래처 접대 안 하고 홍보 안 하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울고 싶으면 울고 설마 할까 싶은 거 진짜로 하면
돈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 이치를 지금에야 깨달았을까?

아들아, 네가 내 애비해라!
십만 유튜버, 파이팅!

" 이번에 편집자 거르고 걸렀거든? 그 십만 넘는 채널 관리해본 애들로 추렸더니
한 세 명 되는데 우리 집에 면접 보라고 하려는데 어때? "

" 응... 오면 되죠... "

" 그냥 오면 끝이야? 뭐 몰카라도 해야지? 유튭각 세워야지, 아들. "

" 에? 피곤한데... 그냥 편집자 새로 구하는건데요... "

" 남들이 그런다고 똑같이 하면 구독자가 늘겠어? 차별화 한 번 해보자. "

" 아빠... "

" 왜? 뭐 있어? 모니터링하는 표정이 왜 그래. "

" 아니... 그냥... "

" 보자 보자, 뭔데 그래. "

- 존나 노잼이네ㅋㅋㅋㅋ 이미 갈아탈 애들은 다 갈아탐 ㅋㅋㅋ 아직 구독자
백만선 붕괴 안 됐네 쉴드러들 지옥행 급행열차 티켓 구입 추천드립니다

- 컨텐츠 차별화 차별화한다 해놓고 맨날 동물 리액션 아니면 격파, 격파도
저번에 손가락 부러진 이후로 무서워서 맨날 연필 ㅋㅋㅋㅋ 연필 격파 장난하냐

- 업로드 주기 지멋대로라 대체 소통을 하겠다는건지 그냥 돈 떨어지면
나오는건지 그리고 애비는 왜 맨날 같이 나옴? 이 부자는 회사도 학교도 안 가나봐 ㅋㅋㅋ

- 저 형제티비 형이랑 같은 학교인데요 얘 퇴학 당했을걸요
--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최종학력이 초퇴야?? 시발 ㅋㅋㅋㅋㅋ
-- 초등학교는 의무교육 아님? 퇴학이 되나?
-- 전 열살 아들 둔 엄마인데요... 진짜 저 아빠라는 사람이 제일 나빠요.

" ... 아들, 이런 댓글 때문에 그래? 너 백만 유튜버야, 이런게 뭐가 어때서?
다 관종이야, 저러고 재미 느끼는 애들한테 기죽지마. 그리고 이번에 또 완구회사에서
형제티비 콜라보하자고 제의 왔어. 언제로 합방각 잡을까? "

" 아빠... "

" 자꾸 왜? "

" 저 학교 다시 갈래요. "

" ... 학교 찾아가기? 야, 그거 되게 괜찮다! 지금껏 초딩 방송 초딩 방송 하면서
학교 방송을 안 했네, 그거 컨텐츠 좋네, 이럴 줄 알았으면 담임 선생님 전화
받을 걸 그랬네. "

" 아니요, 저 그냥 학교 다시 다닐래요. 공부하고, 숙제하고... "

" 아들, 너 학교 안 가도 충분히 스타성 있고, 재능도 있고, 돈도 잘 벌어,
학교 안 가도 뭐 모자랄 거 없어, 안 꿀려, 네가 그동안 번 돈이 아빠가 모아놓은 돈보다
많아, 아빠는 이제 완전히 너 응원하는데? 이거 봐, 마이크도 새로 샀고, 이거 방송국에서
쓰는 거야, 대박이지, 그리고 이거! 이벤트용 문상 주문한거, 이거 또 뿌리면 구독자
떡상이다 너, 그리고 네 방 방음 리모델링 끝나면 이제 리액션 눈치 안 보고 해도 되고. "

" 친구들하고도 가끔 놀고 싶은데, 아무도 안 놀아줘요. 전화번호도 모르고,
물어봐도 안 가르쳐주고, 다 뒤에서 뭐라고 하고, 친한 척 하는 애들은 뭐 사달라고 하고,
안 사주면 대놓고 욕하고, 악플 단다고 하고, 싫어요 누른다고 하고, 인터넷에 들어와도
하기 싫은 리액션 해야하고, 안 하면 또 악플 달리고,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 되고,
모르는 사람은 알기 싫은 사람들이고, 천명, 만명 넘는 선생님들한테 숙제 검사 받는 거 같고,
아빠 말처럼 예전에 자랄 때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계속 방송 켜라고 하고,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먹고 나면 배불러서 컨텐츠 못 하고, 컨텐츠 하자니 맛 없는 거 아니면
초심 잃었다고 하고... "

" ... 진짜 안 할거야? "

" 안 하고 싶어요. "

" 형제티비 안 한다고? "

" 네... "

" 너 진짜 너 하고 싶은대로 한다, 하게 해주면 안 한다고 그런다 너,
너 지금 백만 구독자 실망 시키면 너 평생 후회해. 남들처럼 그저 그렇게 살래? "

" 아빠가 처음에 가르쳐주신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일찍 자고 친구랑 친하게 지내고... "

" 아무런 쓸데없어, 야, 아빠 회사 때려치니까 지금 연락 오는 사람 있어?
아빠 대학 나왔다고 지금 뭐 오라는 회사 있냐고, 아빠 자던지 말던지 누가 불러줘?
아빠를 봐라, 뭐 다 어디 가버렸는지 없어, 바쁘기야 바쁘지, 왜? 형제티비 매니저니까!
형제티비가 회사보다 낫고 대학보다 낫고 친척 친구보다 나은거야, 아빠가 매니저하고
네가 형노스 텐션 유지하면 완전 대박이라니까, 네 동생도 뭐 지금 반에서 일등이니 이등이니
해도 딱 고등학교 졸업하면 유튜브 합류하라고 하고. 너 그리고 어차피 홈스쿨링이야.
너 초퇴 아니야, 네가 왜 초퇴야. 너 고졸 대졸 다 할 수 있어. "

" ... 아빠, 죄송해요!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저 그냥 학교 가게 해주세요,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그냥 종아리 때려주시면 안 되요? 저 유튜브 못 하겠어요,
안 할래요, 무서워요, 재미 없어요, 돈 안 벌어도 좋으니까 그냥 학교 가고 싶고요,
숙제 잘 하고, 양치 잘 하고, 일찍 자고, 이상한 거 안 먹고 동생 잘 챙겨먹고
선생님 말 아빠 말 잘 들을게요, 제발요, 아빠도 저 때문에 옛날이랑 너무 다르고
그래서 가끔 무서워요, 아빠, 제발 예전처럼 돌아와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빠! "

" ... 형제티비 떡락했네ㅡ. "

'유튜브 망했고요 초심 잃었고요 마이튜브, MYTUBE각 세울 시점 인정? 어 인정~
쟤 또 컨텐츠 뽑네 이것도 몰카겠지
몰카 컨텐츠 아빠 속이기 형제티비 안한다고 해보았다 리얼 반응 초대박!
응~ 안 속아~ 우선 쟤 몰카인 거 밝힐 때까지 속는 척해야 유튜브각이니까
속는 척하면서 한동안은 내 위주로 가야겠네.'


9.

[ 크레이지파더티비, 형제티비에서 넘어오신 형님누님 여러분, 크레이지파더티비의
아들딸 여러분, 반갑습니다, 크레이지파더 크파입니다, 조금 있으면 형노스랑 동생이
귀가할건데요, 일단 아침에 된장찌개 끓여준다고 하니까 애들이 간만에 배달음식
아니라고 되게 좋아했거든요? 근데 제가 누굽니까, 크파 아닙니까! 아 그렇죠,
후원 쏟아집니다, 실망 안 시킵니다, 오늘 영양 밥상, 취두부랑 캡사이신을 교묘하게
넣어서, 딱 비주얼은 된장찌개지만 맛 한 번 보면 유튜브각 바로 나오는 몰카 준비했습니다.
채팅창 반응 실화입니까? 잠시 뒤 진행해보겠습니다, 실시간 시청자 이대로 유지해주시고요! ]

어느 집 저녁식사 시간
줄어들지 않는 찌개의 양이 늘어난다
눈물이 더해진 까닭
비죽비죽 아는 아이들과
단 하나의 얼굴을 한 피에로
피에로의 얼굴만 한 피에로
아빠 차장 애연가 병신 아니고 피에로
피에로가 피에로 짓을 한다
금화로 쌓인 산 위에서
지폐가 흐르는 강 위에서
서커스, 서커스.


10.

읽지 않은 부재중 메시지가 있습니다.

애들엄마

난데, 참다참다 미칠 거 같아서
문자 보내. 당신 요즘 무슨 생각해?
애들 왜 안 말려? 아니 왜 당신이
그러는데, 당신 이런 사람은 아니었잖아,
집에 자주 못 오고 나한테는 못 해도
사회생활 잘 하고 애들한테는 다정한
그런 아빠였잖아 당신 정말 나랑 결혼
했던 그 사람 맞아? 솔직히 무섭다
진짜... 나 유튜브 지금 보고 있어
이거 보면 연락해 애들은 똑바로
키워야 될 거 아냐 부탁이니까
대화 좀 하자 나 당신 이러는 거
믿기지가 않고 믿고 싶지 않은데
아무리 봐도 현실인데 당신이 이러고
있네 애들 생각해서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끝까지 애들은 자기가 키우겠다며
이게 나한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었어?


11.

[ ... 어? 이거 뭐야, 잠시만요, 잠시만요 여러분,
아니 리액션 안 한다는게 아니고, 문자가 왔는데요, 문자가,
아뇨 아뇨, 잠시 잠시 쉬었다 갈게요, 문자가 왔는데 보낸 사람이,
아 애들이요? 편의점 가던데요? 뭐 도시락이나 라면 먹고 오겠죠?
걱정마세요, 저 찌개는 제가 뚝배기 다 비울테니까 그정도까지는
제가 다 컨텐츠각 세우고 있습니다, 잠시만... 어... 문자가...
잠시, 잠시 후원하지 마세요, 문자 보고 있거든요.
음... 후... 아, 진짜 잠시만요. 조금 머리 아프네 이거.
골때리네. 휴... 잠시 쉬었다 갈게요, 편집점 잡고 가는 거니까
나가지 마세요. ]

남자답지 않게 손과 발을 가만두지 못 하고 떨어대는 남자.
어떤 컨텐츠라도 귀신 같이 소화해내던 그가 문자 한 통에 왜
동요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구독자들은 이것 또한 그가 짜놓은 판이라며
그를 추켜세우고 있다. 남자는 채팅창의 뜨거운 반응을 바라보며
잠시 흔들리던 눈동자가 다시금 희열에 차오르더니 이내 서커스를 개시한다.

[ 지금부터 나가지 마세요. 레전드 오브 레전드 킹갓레전드각 떴습니다.
지금 형제티비 친엄마가 저한테 문자 왔거든요? 여기 인증 보시구요,
애엄마랑 실시간 전화 연결해보겠습니다~ 크파 전처입니다. 실화입니다.
리얼입니다. 주작 아니고 진짜에요. 나중에 결혼사실 문서로 떼가지고
인증 갑니다. 전화해볼게요. ]

ㅡ♬♬♬

- 방송 안 꺼?!

[ 와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세요 ]

- 야, 개 같은 놈아, 네가 사람이면 지금 방송 켜놓고 전화 받을 때야?
애들 편의점 갔어? 초등학생이야, 걔 둘을 그냥 편의점 보내?
편의점 음식 먹으라고 보내? 어쩌다 그런 것도 아니고, 밥이 그게 뭔데,
취두부? 캡사이신? 진짜 장난하냐고!

[ 아, 당연히 방송이니까 그런거고, 애들 편의점 갔는지 중국집
갔는지 모르겠는데 애들 알아서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다 사먹어,
랍스터도 맘대로 먹을걸? 걔네 형제티비야, 클라스 있는 음식 먹고 온다고,
이건 당연히 몰카용이고 좀 있다가 내가 이거에 밥 한 끼 먹을건데 왜? ]

- 돈이 있으면 뭐해, 아빠가 없는데!

[ 엄마도 지금 없잖아 ]

- 왜 이렇게 변했어

[ 누가 ]

- 너말야, 이런 사람 아니잖아

[ 크으, 명대사 나왔다. 지금 행복한데 왜. ]

- 됐고, 애들 나한테 보내. 당신 애들 못 키워...
내가 당신 밑에 애들 못 놔둬, 난 당신이 나보다는 어른스럽다고
생각해서 애들 보냈는데, 아니네, 내가 완전 잘못 생각했네,
내 새끼들 내가 데려갈거니까 당신은 당신 혼자 살아

[ 썸네일각 나왔네, 뜨니까 돌아온 전처, 형제튜브 노리다 실화냐 ]

- 내, 입에서, 욕나오게 하지마,
정정당당하게, 법으로, 애들, 데려올거니까.

[ 어어 채팅 반응 왜 이래? 저 안 쫄아요, 안 쫄았어요,
법? 뭐, 뭐 로펌 부르면 되나? 멀쩡히 나랑 사는 애들을 어떻게 데려가요,
아무튼 오늘부터 또 시리즈로 갑니다. 법정실화 법 대 법, 가즈아! ]


12.

형편없이 작고 낡은 텔레비전이다.
요즘은 전자제품 매장 가서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는 모델이다.
색바랜 화면에선 앵커가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인기 유투버가 아동 학대와 관련된 논란으로 계정이 정지되었다는 소식이다.

" 편하게 있어도 괜찮아~ 저녁은 된장찌개 먹을까? "

여인은 살갑게 말을 걸지만 두 아이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일어서도, 소파에 앉아도 도저히 편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 형, 찌개 먹으려면 유튜브 찍어야 돼? "
" 아니, 엄마는 유튜브 안 해. "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도시인데도 아이들이 전에 살던 아파트와는
너무나 다른 집구석이다. 쿱쿱한 냄새가 나는 벽지, 얼룩덜룩한 카펫.
나무로 된 구석은 흰개미가 갉아먹었고, 싱크대엔 기름때가 잔뜩이다.

방안에 들어간 여인은 갑자기 문을 닫는다,
다른 여인의 고함이 들리고, 두 여인의 목소리가 겹친다.
아이들은 고양이 앞 생쥐 마냥 쭈그러든다.

" 어쩌려고 데려왔냐, 너 시집 갈 생각이나 하지 어쩌려고 쟤들을 지금 데려와! "

" 엄마, 쟤들 내 아들이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낳은 아들! "

" 이 년아, 왜 네 팔자를 네가 꼬이게 해, 하라는 재혼은 안 하고, 그 놈 애들을
데려와! 네가 돈을 잘 벌어, 아니면 집이 좋아? 너, 나, 니 동생이 한방에 자는데
어쩌자고 둘을 또 데려와! "

" 내가 나가면 되잖아, 내가 나가서 애들이랑 한 방에 살면 되잖아!
내 아들이지만 엄마 외손주야, 애들 왔는데 따뜻하게 반겨주면 안 돼?
외할머니잖아, 몇 년 만에 본 외할머니 아니냐구우! "

" 야, 너, 그만해, 나 지금 진짜, 아우, 말도 안 나와, 나 미치겠네,
아우 환장하겠네, 이거 어떡해, 아이고, 하나님, 이걸 어째ㅡ. "

잘못한 것도 없이 눈물 흘리고 있는 아이들 앞에 낯선 남자가 서있었다.

" 외삼촌 오랜만이지? 너희는 기억도 안 날거다. 안 심심해? 컴퓨터 할래?
텔레비전 보고 싶으면 딴 거 봐도 돼. 뉴스는 안 볼 거 아냐. "

"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그냥 안 하고 싶어요... "

" 그래? 일단 삼촌하고 잠시 나가자. 엄마하고 외할머니하고 너희 왔다고
방청소 하시는 거 같거든? 삼촌이 햄버거 사줄게. 가자. "

" ... "

" 어, 그 가방은 그대로 놔둬. 무겁잖아. 다시 올건데. "

" 다시 와도.. 돼요? "

" 하하하. 엄마랑 외할머니랑 외삼촌이랑 이제 계속 있을건데?
외삼촌이 한 번 들어보자, 너희 얼마나 자랐나, 어우! 제법 무겁네? "

세 남자가 떠난 집,
두 여자의 목소리는 잦아들 줄 모르고,
여전히 떠날 사람의 짐처럼 뻣뻣하게 놓여진 가방,
그 가방끈에 대롱대롱 달린 사진 한 장 속,
한 아버지와,
두 아들의,
행복했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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