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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17:22

[단편] HSKD - 벌레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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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fmkorea.com/best/1122975775
1.
눈이 부시도록 흰 침대 위, 두 사람의 맨살이 엉겨붙은 채 젖어버린 숨을 나누고 있었다.
그 끈적임이 달궈놓은 열기로 인해 머릿속이 아득해질 정도로.

 ' 자기야, 어떻게 된거야? 오늘 완전 미칠 거 같애 '

황홀한 표정으로 더욱 내게 매달리는 아내를 힘껏 안아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타구니가 어째선지 거무튀튀하다고 여기려는 순간,
그녀의 사타구니를 중심으로 음모까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둑알만한 벌레들,

' 아악! '

외마디 비명에 놀라 흩어지나 싶었더니 아내의 은밀한 동굴로부터 왈칵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녀석들은
금새 침대를 새까맣게 뒤덮더니, 바닥을 기어와 내 발을 타고 배꼽 근처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 저리 가, 썅! 저리, 으읍! 퉤, 퉤..! '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집요하게 파고드는 벌레들 덕분에 끔찍한 간지러움이 계속된다..
차라리 죽었으면, 
차라리ㅡ

" 아빠-. "

" 으으. "

" 아빠~! 일어나 봐아, 쪼옴~ "

" 끄으읏. 으음..? "

" 엄마가 잘 거면 쇼파에서 자지말고 침대에 누워서 자래. 나 텔레비전 딴거 보고 싶단 말야~ "

내 혀, 파먹힌 혀는 괜찮은지 혀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입천장에 닿았다. 미끌미끌. 아랫잇몸에 닿았다. 미끌미끌.

" 아아아... 휴. "

" 아빠아, 대답 좀 해~ "

" 상호, 너 방학숙제는 다 하고 티비 보는거야? "

" 아니이이. "

" 임마, 숙제도 안 하고 학원도 안 다니면서 무슨 티비는 맨날 꼬박 챙겨보려고 그래.
방학숙제 할 거 하나 골라서 들고 와. 숙제 하면서 보는 건 괜찮지? "

" 앗싸. 쉬운 거 해야지! "

쪼르르 자기 방으로 달려가는 아들 뒷모습을 바라보던 와중에 뒤에서 따가운 눈총이 느껴진다.

" 천하장사 씨-. 오늘 무슨 날이라고 일찍 퇴근하셨었죵? "

" 패밀리 데이잖아. 시간 넘겨도 초과수당 안 줘. "

" 그럼 패밀리 데이엔 패밀리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옹? "

" 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

" 둘째 가지란 얘기가 자꾸 양가에서 나오는데, 칼자루를 쥔 사람이 가만 있으면 어떡하잔거지요-? 애는 마누라 혼자 낳나요?
오늘 밤엔 애국가 4절까지라도 완창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려도 될련지요-? "

" 아, 안 돼! 오늘 회사에서 얼마나 깨지고 왔는데.. 기운 없어. 알잖아. 나 여름에 벌레 나오기 시작하면
진이 빠진다니까. 참, 에프킬라! 에프킬라 좀 뿌리자. 저녁만 되면 요 앞에 불빛 때문에 날파리들이 아주 그냥~ "

아내가 옆구리를 콱 꼬집는 통에 아픈 소리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코끝이 찡 했다.

" 이 웬수 같은 사람아, 니 기둥은 마술사 고무 풍선이냐? 달린 걸 왜 안 보여주냐? 아주 빙빙 묶어서 리본을 만들어버릴까보다.
선수 수준은 기대도 안 하니까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야할 거 아냐. 왜 쇼파에서 혼자 자는데? 누구 욕 먹일려고? 아앙? "

" 으아아-.. 놓, 고, 말, 하, 자으으- "

" 으휴! "

씩씩대며 부엌으로 향하는 아내.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비비며 베란다부터 현관까지 살피기 시작했다.
방충망이 살짝이라도 열려있으면 다시 꽉 닫고, 혹시 구멍이 뚫린 곳은 없는지 자세히 훑어보고,
에프킬라도 방마다 뿌리고, 전파로 벌레를 쫓는다는 제품도 약발이 잘 들도록 새 구성품으로 갈아끼웠다.
두 번, 세 번씩 반복되는 점검. 그래도 모자라다. 벌레를 쫓기엔 한참이나 모자라다.
그게 내겐 너무도 무서운 일이다.

" 히익-..! "

" 아빠~ 여깄었어? 나 숙제 이거 할래, 봐봐! "

" 상호야, 상호야, 저, 저거, 저거 잡아. 저거 좀 잡아. "

" 뭔데? "

" 아빠 대신 좀 잡아봐, 빨리! "

" 나방이잖아! 아빠, 나 키 안 닿아! 아빠가 손바닥으로 잡으면 되잖아. "

" 너 숙제 두 개 할래? 빨리! 아빠 벌레 못 잡는 거 알잖아! "

" 아빠는 저번에 도둑도 쫓았으면서 쪼그만 벌레가 뭐라고! 메롱, 아빠는 겁쟁이. 겁쟁이래요. "

" 야, 잡았어? "

" 창문 여니까 자기가 나갔어. "

" 다행이다. 휴, 숙제 보자. 뭔데. "

" 이거! 아버지의 고향은 어디인지, 어린 시절 그 곳에서 있었던 추억은 무엇인지 듣고 글쓰기! "

" 아빠 고향? 너 아주 어릴 때 가보고 안 갔지..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빠 집에 계시니까.. 갈 일이 없지. "

" 응, 시골 있잖아. 나무 이-따만큼 크고, 막 꿩 그런 거 날아다니고. 나 기억 나는데? "

" 그게 기억나? 대단한데-. 음.. 생각해보자ㅡ. "

아들의 방학숙제를 도와주기 위해 함께 거실로 돌아가는 그 짧은 순간 동안에,
내 기억도 더불어 유년시절 방학 어느 날로 돌아가있었다.


2.

입술이 천천히 가까워진다, 달라붙을락, 말락,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그래, 방해는 이때 해야 제맛이지!

"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

혼비백산하며 두 입술이 당구공 튕기듯 양쪽으로 잽싸게 멀어지는 모습이 퍽 우스웠다.

" 동각이 누나랑 벌레쟁이랑 사귄다! 사귄다아~! "

" 이 녀석들이, 혼날래 너희들? "

" 와~ 뽀뽀까지 했다~ 우리가 다 봤지롱~ "

형은 주먹을 휘두르며 우리를 쫓아냈지만 입가만큼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우리도 형의 추격이 가짜인 줄 알고 있었기에 겁을 먹진 않았지만 잡히면 지는 거라는 기분 탓에 쏜살같이 도망쳤다. 

마을 어귀 으슥한 바위에 앉아 입 맞추던 남녀는 우리 일당 중 한 명인 동각이의 친누나와 
외지에서 온 대학생 형이었다.

" 헥, 헥, 동각아, 저 형 우리 마을에 앞으로 계속 사는거야? 너희 누나랑 결혼하는거야? "

" 하, 하아, 몰라. 나도 형하고 말 안 해봐서. "

우리는 모두 아홉 살이었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몰라도 그 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의 존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위 뒤에 숨어서 가슴 졸이며 두 사람의 비밀연애를 몰래 쳐다보곤 했던 것이다.
비록 오늘은 심술궂은 장난을 쳤지만, 어느 날은 누구네 형 빨간 잡지를 몰래 훔쳐보듯 두근대는 심정으로 구경하기도 했는데
아마 누나와 형도 눈치채고 있었겠지만 코흘리개들인지라 나무라진 않았던 것 같다.

대학생 형은 서울에서 곤충 생태계 연구로 유명한 모 대학을 다니던 중 교수님을 도와 희귀 곤충에 대한 
서식 실태 조사를 하기 위해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되어있는 우리 마을까지 찾아온 것이었는데,
꾀죄죄하고 유치한 시골 촌뜨기들만 있던 마을에 훤칠한데다 말씨마저 나긋나긋한 청년이 나타나자
그에 반해버린 동각이 누나가 베푼 호의 덕분에 서로 급속히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일찍 결혼하는 관습이 남아있던 시골의 혼기찬 처녀가 도시 청년과 자주 붙어있으니 마을에는 금새 소문이 퍼졌고,
어쩌다 '그래, 너 아주 사귀는거니?'하고 어른들이 찔러보면 동각이 누나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발그레 달아올라선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몰라요~ 아직...'하곤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면 답답해진 어른들이 잠자코 있던 동각이 아버지를 닥달했는데,
동각이 아버지는 도시에서 대학까지 나온 청년이 사위로 들어와 딸을 데리고 간다면 더 바랄 게 없는 모양인지,
'거참, 둘이 좋다하면 맺어주는거지, 그걸 내가 하라 마라 하는 건 옳지 못 하지.. 그저 둘이 좋다면야 뭐 안 될 거야 있나.'
하며 돌아서는데 기분이 그리 나빠보이진 않는게 아저씨도 은근히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온 마을이 그 둘에게 호기심과 기대를 쏟아붓고 있었다.
이렇다 할 연속극 한 편 보기 어려웠던 시절이니 그만한 화제거리가 또 있었을까.
괜히 그 탓에 자기들도 마음이 동해서 어디 어디 나무 밑이며, 우물에서 몰래 만나
밤에 달빛을 조명 삼아 속삭이고 있는 몇몇이 새로 생긴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자 이야기는 그리 아름답게 흘러가지 못 했다.
더위가 주춤하는 동안 벌레의 개체 수도 서서히 줄어갔고, 생태계 자료 수집은 이미 과포화 상태에 이를 정도로 진행되어 있었기에
연구팀은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었다. 단 반나절만에 그들은 마을에 온 적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인사치레 한 번 없이.
 
다른 놈은 몰라도 동각이 누나랑 사랑하는 사이로 익히 알려졌던 대학생 형만큼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어른들이 골목마다 모여 혀를 끌끌 찼지만 누구보다 슬픈 사람은 다름 아닌 동각이네 누나였다.
첫 사랑을 내어주며 영원을 맹세했던 동각이 누나였기에.

누나는 자주 뽀뽀하던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훌쩍이는 소리 사이로 흑흑거리는 울음이 섞여들렸다. 
우리는 예전처럼 바위 뒤에 숨어 눈만 내민 채 누나를 훔쳐봤는데,
그때처럼 재미지긴 커녕 우리가 몹쓸 짓을 하고 있는 죄인처럼 여겨져 심장이 저릿저릿했다.
바늘로 찌르는 듯, 누나의 슬픔이 전염되는 듯한 감정.

특히 자신의 피붙이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본 동각이는 형에게 상대도 안 될게 뻔한 주제에,
" 그 새끼한테 커서 복수할거야. 우리 누나 아프게 한 거, 사과하라고 할거야. "하며 이를 바득 갈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 일이라며 마을 사람들이 대학생 형 이야기를 삼가던 어느 날부터,
동각이 누나의 울음소리도 더 들리지 않았다.
대신 기묘한 행위가 시작되었을 뿐.
학교도 안 다니는 다 큰 처녀가 코흘리개들이나 들고 다닐법한 잠자리채며 채집통을 부랴부랴 챙겨서는
먹기에도 모자란 꿀을 훔쳐와 뒷산 나무에 치덕치덕 바르고 다니는 게 아닌가.

동각이에게 전해듣기론,
본인도 누나가 걱정되는지 무척이나 염려하는 목소리로,
' 누나가 그랬어. 벌레가 안 나오니까 형이 떠난거라고. 벌레들만 다시 나오면 형은 돌아온다고. '

어쨌든 우리들은 골목에서 놀이를 하다가도 누나가 채집통을 짊어지고 손엔 꿀을 잔뜩 바른 채 키히히 웃으며 산으로 갈 때면
예전처럼 농담 한 마디 건넬 수가 없고, 오히려 제자리에 얼어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누나가 한참 멀어질 때까지도.
그러고나면 동각이가 '얘들아, 우리 누나 좀 따라가자. 아빠가 누나 산에 가면 집에 데려오래.'하고 부탁하는데,
한참 놀이하던 놈들이 숙제 핑계 엄마 핑계를 대며 어디론가 다 달아나버렸다.
빨리 핑계를 못 짜내고 남아버린 나는 동각이의 울 것 같은 눈망울에 맘이 흔들려 함께 누나를 몇 번인가 따라갔다.

호호호호!- 지훈 씨, 여기 보이세요? 벌레 많지요? 아주 많지요? 

혼잣말을 하며 이 나무 저 나무에 발라놓은 꿀 위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벌레들을 잡아드는 누나.
거미줄에 휘감긴듯 끈끈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벌레를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 꽉 찬 채집통 안에 우겨넣고 있었다.

" 동각아-.. 누나, 저거 가져가면 뭐해? "

" 방에.. 다 있어. 저번에 잡은 것도 전부 다. 아빠가 누나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막 하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가 다 내다버렸었는데, 다 주워왔어. 꿀 때문에 창문 열어놓으면 저절로도 들어와. 귀뚜라미랑, 무당벌레, 곱등이, 개미.. "

유일하게 자신을 따라와 준 탓인지 동각이는 내게 만큼은 거리낌없이 한 번도 한 적 없는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 이야기를 들을수록 누나가 걱정되고 그 끝에 가선 동각이네 모두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아홉 살 철부지에 불과했던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3.
그런 나날이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봤자 형이 다시 찾아올리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동각이 아버지가 각고의 노력 끝에 형과 연락에 성공해, 
우리 딸이 몹시 찾으니 와주면 시루떡도 해놓고 돼지고기도 삶아놓겠다하니
자기 말로는 자기는 약혼을 이미 했으며 그런저런 이유로 예전에 잠시 만났을 뿐인 동각이 누나를 지금 와서 찾는 건 
두 여자에게 동시에 죄가 되며, 자기는 또 처가 될 사람이 이미 뱃속에 아기를 가졌기에 더는 돌이킬 수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 속에 동각이 누나만 갈수록 심각한 상태로 변해갔다. 
커져가는 집착을 풀 길은 없는데 현실이 도와주지 않으니 망상만 커지는 셈이었다.
그 망상이란 곧 '벌레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었고, 누나는 공허함이 커져갈수록 더 엽기적인 방법으로 벌레를 탐하기 시작했다.
과일껍데기며 꿀을 자기 방에 잔뜩 바른다,
그런 뒤 창문은 활짝 열어놓은 채로 벌레들이 들어오면 손뼉을 짝짝 치며 좋아라했다.

어서오세요- 빨리요-

날씨가 슬슬 추워지고 있었는데도 어째 벌레가 갈수록 많이 날아드는 듯 했다.
그 해의 여름이 꽤 길었고 먹을 게 풍부했던 덕일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누나의 행위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믿었다.

끝내 끈끈이주걱처럼 제 방, 제 자리에서 벌레를 저절로 날아들게 하는 방식을 택한 뒤로 누나는 집 밖을 출입하지 않았다.
간신히 음식만 들어올만큼 방문을 열어준 뒤, 삼 분의 일만 게 눈 감추듯 허겁지겁 입에 쑤셔넣고 
나머지 음식은 구석에 던져놓았다. 그럼 밤이고 낮이고 꿀향에, 과일향에, 
음식물 냄새를 맡은 벌레들이 왱왱 모여들어 먹고, 기고, 싸고, 알을 까며 난장판을 벌였다.
누나는 지나가는 어르신께는 본 척 만 척하면서, 벌레가 새로 날아들면 헤죽헤죽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
희망이었던게다. 떠나가버린 사랑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믿게 해주는 현실 도피의 수단.

그런 누나의 상태 때문에 고심한 동각이네 부모님은 차라리 방에 혼자 놔두는 편이 손가락질 덜 받고 피해도 덜 주는 거라고 인정했다.
그 말인 즉슨, 누나가 미쳐버렸단 사실을 인정했단 말이다.


4.

" 아, 그 년을 어디 정신병원에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구요! "

" 자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 내 딸을 정신병원에 보내라고 하는거야 지금! "

" 저거 안 보이쇼? "

동각이 누나를 입원시켜야 한다는 청년회장 아저씨의 멱살을 잡으며 화내던 동각이 아버지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반론도 하지 못 했다. 청년회장 아저씨의 손가락이 동각이 누나 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벌레들이 제 집처럼 바글바글 들끓었다. 

" 외지 사람들이 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곧 추석인데 어쩔건데요? 막말로, 우리들 다 참을만큼 참았다구요! "

" 이 사람아, 내가 아버지로서 어떻게 딸한테 그래,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어 무너지는 내 억장을 왜 몰라줘! "

" 알죠! 알죠! 나도 자식이 둘인데, 압니다! 근데 저 벌레 좀 보란 말입니다! 우리 집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있는데
창문을 못 열고 삽니다! 방이 새까매지도록 저기 저렇게 들어차있는 거 보십쇼! 아니, 딸래미 저 안에서 어떻게 버티나 몰라! "

동각이네와 마을의 갈등이 매일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
동각이는 제 잘못이 없는데도 어깨조차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주눅들어 외톨이를 자처했고,
마을 사람 모두가 그런 동각이네를 동정하긴 커녕 손가락질하며 흉봤다.
벌레는 여전히 마을에 들끓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여름보다 더 얄궂게 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모든 걸 동각이 누나탓이라고 확신했다.

정신병원에 보내자는 청년회와 동각이 아버지 간의 말싸움이 한참을 이어진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마을 창고에 쟁여둔 말린 쑥을 태워 그 연기로 벌레만이라도 퇴치하기로 하고, 곧장 추진하기 시작했다.
해가 산 중턱에 달할 즈음 마을 사람 한 명 한 명마다 쑥 한 짐을 들고 와선 동각이네 마당 앞에 내려놓는데
흡사 정월대보름 달집 태우기라도 하는 듯 사람들이 우루루 모인 광경이었다.

" 자, 불 지핍니다. "
" 그러게. "

동각이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청년회장 아저씨가 쑥단에 불을 피웠다.
화기가 금새 주위를 달구며 쑥연기가 펄펄 올라오자 마을 사람들이 부채며 포데기를 휘휘 저어 
연기를 동각이 집 쪽으로 향하게 했다.
날을 잘 잡은 걸까, 은근한 바람이 뒤에서 불어와 연기를 더욱 부추겼다.
금새 쑥연기가 동각이 집으로 파고들어갔다.

" 와, 나온다! 나온다! "

벌레가 우글우글 쏟아져나오는 광경은 기가 막혔다.
날파리, 무당벌레, 날개 달리거나 뛰어다니는 곤충이 새까만 구름처럼 튀어나오니 연기가 반, 벌레가 반이었으니.
마을 사람들이 욕을 뱉으며 부채질을 서둘렀다. 바람이 도와줄 때 끝내버리자면서.

" 지훈 씨! 지훈 씨이! 안 돼! "

검은 덩어리일까, 아니지, 사람만한 벌레가 틀림없다.
끈적이는 점액질에 둘러쌓인 커다란 애벌레가 문턱에 걸리며 흙바닥에 떨어졌다.

" 지훈 씨! 어디 가요! 어디 가! "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건 애벌레가 아니라 동각이 누나였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누나는 아니었다.
발가벗고 있었다. 온 몸이 얼마나 벌레한테 물리고 잡아뜯겼는지 벌레독이 시뻘겋게 오른데다
그 탓에 퉁퉁 부은 몸은 얼굴이며 손발가락까지 풍선처럼 부푼 채로 상처에서 흐른 진물과 핏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는 게 사람보다는 벌레에 가까워보였다.

우아악, 기괴한 모습에 마을 사람 모두가 달아났다.
누나를 정면에서 마주한 나는 공포에 휩싸여 발을 뗄 수 없었다. 
누나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참혹한 얼굴이 웃고 있었다.

" 지훈 씨-... "

나? 나보고 그러는 거야?

" 오셨네요-! "

입이 째지도록 웃는다는 말이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상처 때문에 피딱지가 셀 수 없이 눌러붙은 누나가 헤죽 웃자 딱지가 옆으로 쫘악 벌어지며 피고름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누나는 역시 상처로 엉망인 양팔을 활짝 벌리며 나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왔다.
얼굴부터 겨드랑이까지 그새 터져버린 상처에서 뚝, 뚝, 액체가 흘렀고 그 궤적은 점점 내게 가까워졌다.
발이 땅에 붙어버린걸까, 움직일 수 없었다.

" 사랑... 해요...! "

빠각!
순간 누군가 뒤에서 내려친 몽둥이 한 번에 누나의 뒤통수에서 피가 튀어올랐다.

" 끄르르르, 끄르르! "

그 자리에 고꾸라진 누나는 마치 벌레가 죽을 때 그러하듯 사지를 하늘을 향해 부르르 떨더니 이내 죽어버렸다.

" 헉, 헉, 으으윽. "

너무 놀란 탓에 욱씬거리는 가슴팍을 힘껏 끌어쥔 채 날 도와준 은인이 누구인지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동각이 아버지. 당신이었다.

" ... 미안하다, 아가, 우리 아가... "

눈물범벅인 아저씨는 그대로 몽둥이를 놓았다. 

마을에서 '벌레'가 사라졌다.
사람들의 온기도. 같이.


그 날 이후 동각이네는 집을 버리고 아무 말 없이 마을을 떠났다.
당연히 집은 흉가가 되어버렸는데, 가끔 밤에 열린 창문 사이로 울퉁불퉁한 무언가가 히죽히죽 웃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고자 도시에 있는 삼촌 집으로 이사간 이후론 주민들이 소문을 못 이기고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해 
마을이 망해버렸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마을 전설일 뿐,
실제 행정적으로 조사한 바로는 병충해가 심해져 주수입원인 농업이 어려워지자
벌레가 없는 곳으로 자연스레 이주하다보니 마을이 퇴화가 되었을 뿐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그 또한 벌레와 연관이 있다보니 나는 그 날의 기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고향에 대한 추억은 없는 채로, 잊고 싶은 기억만을 가진 채로 살아왔다.

 " 아빠아, 아빠, 얘기 해달라니깐! "

" 어? 응? 아, 아빠가 오래 된 이야기라서 잘 모르겠는데, 다른 숙제 없어? 뭐 아빠 발 씻어드리기 이런 거. "

" 그런 게 어딨어, 아빠만 좋은 건데! "

" 없어? 없으면 뭐 어때, 아빠 어깨라도 주물러. 대신에 숙제 내일 하고 오늘은 아빠랑 티비 볼까? "

" 진짜? 아싸, 세게 주무를까? "

" 여보! 애 숙제 시키다말고 같이 놀면 어떡해? 하여간 남편은 큰아들이라더니~ 상호야, 아빠 진지 드시라고 해. "

" 아빠, 엄마가 밥 먹으러 오래! "

" 임마, 어른한테는 진지 드세요- 라고 하는거야. "

아들을 먼저 식탁으로 보낸 뒤 또 다시 집안의 창문, 창틀, 모기향을 하나하나 살핀다.
그렇지 않으면 또 떠올려 버리니까.

벌레가 되버린 누나가 네 발로 다닥다닥,
우리 집 어딘가에 붙어있는 상상을..
 

ㅡ 벌레누나(2017) 끝. 환상괴담.
괴담의중심TheEpitaph&공포문학의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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