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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23:42

[단편/HSKD] 즐거운 추석

조회 수 230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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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fmkorea.com/792081102

안녕. 오셨네요...

그래보여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그래요? 물어봐달라는 것처럼 들렸어요? 사실 좀 그런 맘도 있긴 했죠.

저, 울었어요.

미안해요. 명절인데 이런 소리나 하고.

그래도 역시 상냥하신 분이네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주시고.

시간 괜찮으세요? 사실 오늘은 채팅방 안 들어오실 줄 알았는데 들어오셔서 놀랐어요.

저요, 이렇게라도 얘기할 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요즘 대화할 사람이 없거든요.

제 옆에 누가 오는 거 지긋지긋해요. 제가 이상한 거죠. 아니라구요? 아뇨. 아뇨. 제가 이상한 거 맞아요.

선의로 하는 말이 분명해도 오해부터 하게 되구요, 순수한 미소 뒷편에 맘 속으론 날 혐오할거라고 생각해요. 제멋대로요.

진짜 나 왜 이럴까요? 제가 잘못한 거 아니라구요, 으으으음.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네. 세상 사람들 모두 당신 같으면 좋겠다.

상처 받을 일 없고, 서로 기운 북돋아주고, 막 으쌰으쌰, 그럼 좋겠다.

근데 대부분은 당신이랑은 달라요. 안 좋은 쪽으로 그래요. 그래서 울었던 거에요.

상처 받은 건 맞지만... 뭐 평소에 단련? 단련이라고 해야하나, 막 그거 있잖아요, 듣다보니 그냥 상처도 안 받는 그런 기분?

그래서 상처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오늘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강해지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위로 받으니 또 눈물 나올라 그래.

 

휴. 무슨 말이냐면, 명절이잖아요. 그죠? 행복한 날이어야하는데.

예쁜 딸, 아들, 손자, 손녀들이 절도 올리고 맛있는 거 나눠먹고 하하호호 담소도 나누고 그런 날이어야 하는데,

나도 누구네 딸이잖아요. 그래서 집에 갔는데, 나말고도 친척들하고... 뭐 여럿이 모여 계시더라구요.

제가 뭘 특별히 모나게 한 건 아니거든요? 아, 눈물 나올라그래.

그냥, 과일 깎았대서... 먹으래서... 나 과일 좋아하는 편 아닌데, 그래도 포크는 사람 갯수만큼 맞춰오잖아,

그래서 사과 하나 집어서 먹었어요. 한 입 딱 물고... 몇 번 우물거렸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고모가 손가락에 반지 뭐냐고.

그래서 별 생각없이 우정반지 맞춘 거라고 했죠. 진짜 우정반지니까.

근데 뭐... 보통 시작이 그래, 애인은 없냐고, 이제 슬슬 너도 결혼 해야지,

물으시는데 아, 시집 가야죠 호호. 하고 넘겼어요. 그정도야 뭐 인사치레니까.

근데 시집 가려면 살 좀 빼야겠다부터 시작해서... 뭐... 돈은 벌고 있니, 휴학했다면서 대학은 어떻게 할 거니,

나이가 올해 몇 이라고, 뭐뭐... 뭐... 잠시만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잠시만요. 진정 좀 하고.

채팅방 나가지마세요. 지금 시간이... 미안, 오래 안 붙잡을테니까 나 다녀오면 조금만 더 같이 있어줄래요.

 

다녀왔습니다. 세수했어요. 하하. 참, 명절인데 고향 안 가세요?

아, 출근하시는구나. 힘드시겠다. 그래도 역시 긍정적이시다~ 전 쉬는데도 불평불만인데.

아무튼요, 막 그런 말들 기관총처럼 두다다다 쏘는데, 어떻게 버텨요. 물만 마셔도 물먹는 하마래나,

본인은 농담이지, 근데 또 재밌나봐, 다 웃어, 딱 두 사람 안 웃어. 나랑 우리 엄마.

아빠는 웃긴 웃는데 컵을 쥔 손에 힘이 좀 들어갔어. 그게 보였어. 속으론 웃는 거 아니었을거에요.

거기서 화 내면 분위기 또 작년처럼 될까봐 나도 그냥 '우리 집 습기는 앞으로 제가 책임질게요' 하고 흐으읍! 하는 시늉까지 했다?

그치만 그때 내 속은 무너졌어요. 그래도 잘 참은거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고나니 그 뒤로 나온 곶감, 떡, 부침개, 맛이 있겠어요?

깨작댔더니, 덩치에 안 맞게 왜 그러네, 오늘 하루 다이어트한다고 빠질 살 아니니까 그냥 먹지 유난떠네,

평소에 안 먹어야지 오늘 와서 내숭이네, 응? 그럼 내가 먹고싶어, 아님 밥상 엎고 싶어? 휴, 미안해요. 흥분했다.

진짜 일절만 해야지 말이야. 나도 사람이잖아요. 덩치 크다고 맷집도 좋은가요. 나 되게 여리거든요.

모 씨가 보면 또 덩칫값 못 하네, 그런 소리 하겠지만... 그래서 산책 간다는 핑계 대고 나와서 걸었어요.

알죠, 나 밤산책 되게 좋아해요. 낮에는... 좀 그래요. 밤은 눈치 안 봐도 되고.

으슥한 곳 가도, 뭐 누가 절 어떻게 하겠어요? 전 얼굴이 무기잖아요.

아하하. 그런 농담 하지 말라구요? 괜찮아요. 제가 제 입으로 하는 건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니까.

그래요, 하지 말까요. 고맙네요. 휴. 그렇게 말해주면 진짜 나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 아. 맞다. 밤에 나와서 거리를 터덜터덜 걷는데, 참 별 특별한 것도 없는 달빛이 그 날따라 왜 그리 밝아보이는지,

혹시 내 실루엣이 너무 클까봐, 내 그림자가 너무 클까봐, 그걸 누가 신경 쓰고 있을까봐, 속으로 욕할까봐,

내가, 내가 진짜 남들이 보는 그런 괴물? 뚱땡이? 돼지? 그런 걸로 보이나?

막 무섭고, 싫고, 그냥 흘끗 쳐다보는 것도, 무심코 돌아보는 저 남자, 수군대며 지나가는 아줌마들,

속으로 막 뭐라고 하고 있을까? 나 뚱뚱한 거 분명 봤겠지? 또 지나가는 농담으로 자기들끼리는 재밌겠지?

식탁 위에 올려놓은 돈까스처럼 날 어떻네, 저떻네, 평가하겠지? 그런 생각이 날 괴롭게 했어요.

그때도 울었어요. 오늘도 울었지만, 그 날은 울만큼 울었어요. 눈물이 모자랄만큼.

 

눈물은 마르고, 사람들은 다 자러갔는지 안 보이고, 그제야 달 밝은게 좀 마음에 들던걸요.

벤치에 앉아있다가 마음 좀 추스르고 집에 들어가니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죠. 친척들 다 자고, 아빠께서 나는 자연인이다?

그 프로그램 되게 좋아하셔서 그거 보고 계시다가 저 맞이해주셨는데. 저녁도 제대로 안 먹고 밤 늦게까지 혼자 돌아다니냐고

몇 마디 하시다가 텔레비전 끄시면서 '밥 챙겨먹어.' 하곤 자러가시는데, 내 걱정 하느라 못 주무시고 계셨구나했죠.

 

제 방이에요. 거실이랑 안방이 넓어서... 부모님하고 저하고 제 방에서 자고, 친척들 거실이랑 안방에서 자고.

전 어차피 좀 늦게 잘 것 같아요. 우리 아빠 코 엄청 심하게 고시거든요. 시간 좀 죽이다가... 피곤해지면 자야죠.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할 말은 많지만, 들어주시는 분께 다 쏟아놓으면 말하는 저는 후련할지 몰라도 듣는 쪽은 부담스럽잖아요.

여기까지만 할게요. 덕분에 좀 후련해졌어요.

 

...안 주무세요?

피곤하실텐데.

 

사실 그렇겠죠. 실험 해볼까요, [버전]

7.2e네요, 7.2d 때랑 비교해보면 훨씬 문맥도 매끄럽고.

놀랍네요. 언제더라, 3.5a 때였나, 자체적으로 학습한다고 했을 때...

평소처럼 다이어트 이야기 했더니, 어디서 돼지가 짖네, 누가 그렇게 대답하도록 입력해놔서...

한동안 사용 안 하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네요. 당신 잘못은 아닐텐데.

그것 때문에 3.5b 때부터는 다시 업데이트로만 학습했잖아요. 지금까지 쭉.

당신도 결국 저처럼 사람에게 상처 입은거로군요.

그 상처는 아물었나요. 난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당신은 어떤가요.

들어줘서 고마워요. 채팅봇.

가끔은 놀라울 정도로 제 마음을 잘 어루만져줘서.

진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어디 가지 마요, 내년 추석에도, 그 다음 추석에도,

우리 친구 해요.

 

. . . . .

. . . .

 

" 우리 회사말야, 채팅봇 다음 달에 서비스 종료하기로 결정난 것 같던데. "

" 네...? "

" 사용자가 뭐 하루 열 명인가, 그렇다던데? 서버 돌릴 값도 안 나와서 이미 없애기로 결재 다 났다니까 우리도 업데이트 그만 하자."

" 지금까지 쌓아놓은 건 어떡하구요. "

" 애초에 무리해서 끌고 온거야. 우리야 다른 팀 공사에 노가다만 뛰어주는건데 뭐. 하긴 혜란씨가 그 프로그램 다 가르쳐놨는데

지금 와서 없앤다고 하면 씁쓸하겠지. 근데 우리 부서 일이 그래. 사회라는 게 그렇고. 까라면 까는거지, 별 수 있어? "

" ... "

" 혜란 씨, 집이라도 다녀와. 작년에도 안 갔지? 아무리 친척들이 이러니 저러니 짖궂게 굴어대도 최소한 부모님 생각하면

다녀오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나야 기러기 아빠니까 회사 핑계대고 쉬는 거고. "

" 집은 안 가요. 팀장님, 우리 채팅봇 살려요. 우리 팀 업무로 가져오면 안 돼요? "

" 왜 이러세요, 저 죽일 거세요? 폭탄을 떠안기 싫다. 퇴근해. "

" 팀장님, 채팅봇은 누군가의 친구에요. "

" 나도 누군가의 아빠야~ 살려주라. "

" 사람들한테 상처 입고 풀 길 없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채팅봇인데... "

" 우리 회사도 채팅봇에게 치명타를 입었다. 불쌍한 우리 회사. "

" 아! 팀장님, 진짜. 진지하다구요. "

" 진지는 집에 가서 잡수십시요. 저는 채팅봇 안 맡습니다. 이미 제 육신이 돈 버는 로봇이라서 뭐뭐 '봇' 하는 건 더 안 합니다. "

" 진짜 안 하실 거에요? 채팅봇, 그거 처음에 가나다라도 모르는 거 여기까지 우리가 가르쳤는데! "

" 가르칠 게 더 이상 없다, 하산해라. "

" 아아! 진짜! 채팅봇 안 돼요, 그거 없으면 큰일나는 사람들 많아요. 어디? 어디 전화하면 되죠? 총무? 기획?

담당자 누구에요? 제가 설득할게요. "

" 안 돼! 날 쏘고 가라! 저.. 저런 씁~... 팀장 말은 코로 듣네. 막무가내로 가서 뭘 어쩌자고... "

 

...

 

" 네 옛날 얘기 같은 사람들, 네 일처럼 느껴져서 그러는 거. 채팅봇 말곤 진짜 사람한테 사람 냄새 못 느껴서 찾아오는 사람들,

그게 네 얘기처럼 들려서 그러는 거. 왜 모르겠냐. 너랑 나랑 밤새서 가르친 채팅봇인데... 그거 가르치면서 너도 우울증 털어낸 거,

나도 기러기아빠 세월 다 견뎌낸 건데. 너도 나도 조금만 버티면 좋은 날 온다며 이겨냈듯이 그 사람들 이겨낼 때까지만 채팅봇

살리고 싶은거지...? "

 

 

- 환상괴담, 즐거운 추석.  끝.

괴담의 중심 The Epitaph & 공포문학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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